국내 기업에서는 직무급이 불가능할까. 필자는 단연코 ‘No’라고 밝힌다. 그렇다면 왜 많은 인사담당자들이 직무중심 인사제도 실현이 어렵다고 하는 것일까. 필자는 각 기업의 상황을 체크해보면서 해결방안을 모색해보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직무급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 몇 가지를 제안한다.
“내 판단으로는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직무급이 국내 회사들에 도입되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
한 기업의 인사임원이 올해 인사 전략과제를 논의하던 중 한 말이다. 그는 20여 년 동안 인사업무를 담당하면서 업계에서 나름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현업전문가가 이렇게 말할 때에는 충분히 현실적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사전문가들이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헌데, 국내 기업에서는 정말 직무중심 인사 혹은 직무급이 불가능할까. 국내외 다양한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는 직무급 운영방안을 설계해 본 필자로서는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국내 인사담당자들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더불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직무중심의 인사 혹은 직무급을 도입할 수 있을까.
먼저 직무중심 인사를 보다 근본적인 변화의 방향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모든 회사들이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직무중심의 인사·직무급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사운영 체계라고 하는 것을 크게 두 개의 유형, 즉 사람중심의 인사와 직무중심의 인사로 나눠 볼 수 있겠으나 개별조직의 인사는 이 두 가지 유형의 연속선상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 기업의 인사는 사람 중심의 인사 유형에 치우쳐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니, 이를 직무중심 쪽으로 무게 중심을 좀 더 이동하는 것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Check 1. 전통적인 직급을 중시한다고 단정하고 있는가
직무중심의 인사 도입을 검토할 때 가장 흔하게 듣는 이야기가 우리 조직은 아직 직무가치 차별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세대간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앞으로 조직을 이끌어가야 할 젊은 세대에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국내 한 그룹사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나온 얘기 중 하나가 ‘내가 하는 일이나 상사가 하는 일이나 별 차이가 없는데 왜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더 많은 보상을 받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바꿔 얘기하면 연공중심의 직급으로 인한 보상의 차별화에 대한 불만이라 하겠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막연히 우리 회사는 여전히 기존의 직급을 중시한다고 생각해 볼 것이 아니라 실증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설령 직무가치의 차별화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과연 어떤 집단에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그 집단의 니즈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Check 2. 전사적인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두 번째로 많이 듣는 이슈는 직무중심의 인사를 도입하면 업무 변화에 따라 직무등극(직급)의 상승 및 강등이 빈번하게 발생하여 전사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조직 관리가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직무중심의 인사를 너무 융통성 없게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오해 중 하나다. 직무 등급을 넓게 정의하는 이른 바 브로드밴드 시스템을 도입하면 위와 같은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또한 전략적 이동시 개인등급 유지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면 위 이슈는 해결 가능하다. 또한 실제로 작은 업무 이동으로 등급이 바뀌어야 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많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렵다.
Check 3. 공채 시스템 회사에서도 가능할까
세 번째로는 채용과 관련된 이슈로 채용을 하고 나서 조직의 지시에 따라 특정 업무를 수행하게 됐는데 어느 날 당신의 직무는 가치가 낮으니 낮은 보상을 받으라고 한다면 그 누가 이를 수용하겠는가의 문제이다. 일정부분 맞는 이야기이다. 공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기업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이슈이다. 하지만 이는 우선 단기적으로 총보상 관점에서 기존 인력을 설득(예: 직무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지만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해당 조직에서 쉽게 일을 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등)하고, 장기적으로는 인력을 확보하는 방식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사실 국내 기업의 채용 변화 기류를 보면 공채방식은 지양하고 개별 채용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공채 시에도 특정직군별의 채용을 채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Check 4. 직무의 시장가치 판단이 가능한가?
네 번째로는 직무가치에 따라 급여수준을 결정할 때 외부 노동시장의 수준을 참고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외부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객관적 방식으로 특정 직무의 급여 수준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곤 한다. 이 또한 일견 맞는 말이다. 외국에 비해 직무별 급여수준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직무를 중심으로 급여수준을 조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실제 직무별로 어떻게 시장이 형성되오 있는지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전통적인 직급중심의 인사를 운영하는 기업이라도 실질적인 업무 난이도에 따른 급여차는 존재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으며, 또한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은 직무급을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외부시장의 데이터를 얻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직무가치라는 것은 기업 내의 상대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볼 때 내부적인 기준을 가지고 급여수준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보상측면에서 본 선제적 해결방안
회사의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 첫 걸음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우선 보상측면에서 생각을 해 보자. 보상측면에서 직무급을 도입한다고 하면 어떤 부분을 고민해야 할까?
실무적으로는 직무에 대한 정의 및 정리가 우선 필요하다. 직무급을 도입하는 근본적인 취지가 인력운영의 효율성 및 인적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것임을 고려해 볼 때 과연 어떤 단위로 직무를 정의·정리하는 것이 좋을지 일차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회사의 경영환경, 전략방향 및 업무 특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업무 변화의 폭이 크지 않은 경우라면 직무를 세세하게 규정할 수 있겠으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폭넓게 규정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직무가 정의됐다면 직무에 대한 적합한 가치평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직무의 가치를 판단할 때 중요한 것은 현재 조직의 직무가치 수용도 수준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국내의 경우 그 수용도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HR시장에서 검증된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이 보다 유리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직무가치를 보상의 어느 요소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직무가치는 고정급(기본급 또는 수당) 요소에 반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성과급에 반영하는 방식도 가능하다(사실 서구에서는 기본급과 성과급에 모두 직무가치가 반영되는 체계가 일반적임). 가장 전형적인 방식인 기본급 반영방식은 직무가치에 따라 고정급 요소를 차등화 함으로써 전반적인 HR 비용을 가장 합리화 할 수 있는 방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인 저항이 가장 많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적용방식에 있어 단계적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본급에 직접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차선책으로 많이 적용되는 방식은 수당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기존 수당항목을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수당 항목을 신설해야 하는지 사전적 검토가 필요하며, 이 때 전반적인 수당체계 및 관련 비용 구조를 함께 합리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위와 같이 기본급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급에도 직무가치 요소를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들(노조 포함)의 수용성 제고 전략의 사전적 수립 및 일관된 실행이다. 이는 긴 호흡을 가지고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필자와 함께 직무중심의 인사로의 전환을 기획하고 있는 한 회사는 승진자 교육과정 중 직무중심 인사에 대한 이해 과정을 신설하여 인사가 아닌 일반 관리자들도 직무중심 인사로의 전환 필요성 및 그 내용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향후에 있을 직무급 도입의 사전 정지 작업으로서도 그 의미가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본 기고문은 「월간 HR Insight」 2017년 5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